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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으론 초등학교 때 부터 일년에 한번씩은 내 취미를 적어서 선생님께 제출해야 했었다. 난 이게 싫었다. 매년 “그림 그리기”, “영화 감상” 등을 가장 자주 적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매일 그림을 제대로 그리는 것도 아니였다. 교과서에 낙서하는 게 좋았을 뿐이다. 그리고 솔직히 영화도 별로 안 좋아한다. 호러, 스릴러, 로맨스 다 빼면 남는 장르도 별로 없다.

내가 진정으로 그림 그리기를 꾸준히 즐겼다면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을 거고, 그것은 더이상 나의 취미가 아니라 나의 직업이 되었을 거다. 영화보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면 나는 감독이나 배우의 꿈을 꿨을 것이고, 그것 역시 나의 취미가 아닌 일이 되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항상 순간 빠져들었다가 금새 열정이 시들어버리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어느샌가부터 취미를 일종의 ‘스펙’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취미가 없으면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보인다. 마치 삶에 무기력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반대로,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여러 액티비티를 나열하고 경험담을 들려주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이 인생을 정말 보람차게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부러워한다.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impressive 하다고 느끼는 취미의 조건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연속성, 두번째는 특수성이다.

  1. 연속성

    하나의 취미를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하는 사람은 멋있어 보인다. 무언가를 3일 하다 관둔 사람과, 3년째 진득하게 하는 사람에 대해 느끼는 우리의 감정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전자는 flaky 해보이고 후자는 성실해보인다. 무언가에 대한 꾸준한 노력은 항상 사회에서 높게 받아들여지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2. 특수성

    취미가 특이할수록, 남들에게 생소한 것 일수록 더 있어보인다. 본인의 취미가 “암벽 등반” 이거나 “첼로 연습하기”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분명 주변의 관심을 살 것이다. 반대로, 가장 좋아하지만 남들이 보편적으로 다 하는 것은 왠지 언급할 가치가 떨어져보인다. 내 취미가 “영화 감상”, “노래 듣기”, 혹은 “유튜브 보기” 밖에 없으면 굉장히 단조롭고 평범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 내 주변에는 혼자 가만히 침대에 누워 멍때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까지 나의 취미라고 할수 있는 것들을 연속성과 특수성의 두 축으로 나누어보았다.

특수적 보편적
연속적 이런 글 쓰기(?) 사람들 만나기
예쁜 옷 사입기
음악 듣기
책 읽기
공부 하기
일시적 재즈바 가기
수채화 하기
야경 보기
여행 가기


연속적-특수적인 취미들은 자신을 “브랜딩” 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톡톡 튀는 자소서를 쓰려고 할 때, 혹은 소개팅에 나갔을 때 이 요소들을 활용하면 어느정도 관심을 끌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난 이러한 연속적-특수적인 취미가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어렸을 때 부터 부끄러웠다. 주변 친구들은 항상 특정 악기를 다룰줄 안다거나 특정 운동을 꾸준히 좋아했다. 그런 친구들은 “아, 그 X 잘하는 애?” 라고 항상 언급되는 것이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피아노, 바이올린도 초등학교 때 싫증나서 다 관뒀고, 운동도 고등학교 때 라크로스에 3개월 발만 담구고 때려쳤다. 연속적-특수적인 취미를 채우려고 억지스러운 노력도 했다. 스무살이 되자마자 30만원이 넘는 색소폰을 사서 집 앞에 재즈 클래스에 등록했다. 하지만 이것도 정확히 이틀 가고 다 그만두었다. 4년째 먼지만 쌓인 색소폰이 책상 옆에 아직도 있다.

반면에 연속적-보편적인 취미들을 남들에게 소개할 기회를 일상에서 그렇게 많이 갖지는 못하는것 같다. 정말 기회가 오지 않았던 건지, 내 자신이 “진부한 대답”을 함으로써 남이 나에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게 두려워 일부러 피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요소들이 나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에 데려다 준 것임은 분명하다.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친한 친구들과, 혹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얘기 하는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예쁜 옷을 사서 내일 뭐 입을지 고민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딜 가든지 꼭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는걸 좋아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유익한 책을 찾아 읽는걸 좋아한다. 새로운 걸 배워 완전히 이해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요소들은 나를 굳이 남과 “차별화” 시키지 못하고, 동아리나 대외 활동 등으로 이어질수 없었기 때문에, 나의 “취미” 라고 레이블링 하여 남에게 소개하기 부끄러웠다.

또한, 일시적-특수적인, 나를 특정한 순간에만 사로잡았던 취미들도 꽤 있었다. 항상 들으면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고 찡해지는 재즈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스무살이 된 후로 서울의 재즈바들을 꽤 자주 갔었다. 하지만 특정 가수나 연주자를 좋아해서 꾸준히 찾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나에게 재즈에 대해 물어보면 “그냥 좋아” 말고 할말이 없다. 아직도 어떤 재즈 가수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가 취미이면 왠지 그 분야에 유명한 사람에 대해 남과 깊게 대화를 이어나갈수 있어야 할것만 같은 강박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일시적-보편적인 취미들은 그냥 내 인생에서 즐거웠던 어느 부분의 조각들이다. 가끔 걷다가 도시의 아른거리는 주황색 불빛들을 보면 가슴이 차오른다. 하지만 굳이 기막힌 야경을 검색하여 찾아다니진 않는다. 낯선 나라에 가서 모든게 새로워 보이는 그 설레임이 좋다. 하지만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여행기를 쓰는 사람은 아니다. 이러한 순간의 행복들이 내 안에 쌓여왔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들을 나의 취미라고 부르기엔 너무 꾸준함과 특이함이 없어보였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 중 연속성, 특수성이 떨어질수록 남에게 굳이 얘기를 안하게 된다. “취미”와 “좋아하는 것”은 왠지 다른 것 같아 보인다. 큼직하고 명사화 될수 있는 형태들이 통상적인 취미에 부합한다. 그러나 이것들로만 나를 정의하면 나는 너무 단면적인 사람이 된다. 사실 돌아보면 일상에 내가 정말 좋아서 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은 정말 많다. 위 표에 다 적을수도 없다.

언제부턴가 워라벨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라” 부분에 해당하는 나의 삶 마저 굉장히 보람차고 반짝여야 할것 같은 느낌을 준다. 취미를 잘 즐기는 사람이, 단조롭고 꽉 막혀있는 “워” 로부터의 속박을 벗어던진, 굉장히 신세대적인 일종의 보헤미안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취미가 항상 몇년을 갈고 닦아 전문적이거나, 일부러 평범함을 거부하는 액티비티 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루 중 나에게 가장 편안하고, 설레이고, 행복한 순간들을 만들어 줄수 있는 그 무엇이어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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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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