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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요즘 잘지내?” 라고 물으면, 난 항상 “나 완전 잘살고 있어” 하고 대답한다. 형식적인 자동반사, 마치 “How are you?” 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I’m fine thank you, and you?” 하는 류의 대답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정말 그 순간에 내가 잘 살고있다, 내가 행복하다고 항상 믿었기 때문에 나온 대답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 중, 건강하지 못한 태도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 듯 하다. 첫번째는, 객관적으로 상황은 괜찮은데 그걸 안 좋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toxic negativity, 대표적으로는 우울증이 있다. 두번째는, 객관적으로 상황이 “안” 괜찮은데, 그것을 억지로 좋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toxic positivity이다. 자신을 갉아먹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애써 그것을 인지하기를 회피하고 마냥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다.

Toxic positivity는 사실 애매한 구석이 많다. 사실 이 말을 조금만 달리해도, ”힘든 시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인 사고는 어느 책을 읽던 명강의를 듣던, 항상 강조되는 삶의 자세이긴 하다.

나는 내 자신이 toxic positivity를 가졌다는 사실을, 일년 전 쯤에 처음 인지하게 되었다. 나는 항상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거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그것 때문에 내 자신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진즉 알아차리고 처음부터 그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회피한다. 마음속에서 조금이라도 우울감과 공포감의 신호가 보이면, 즉각적으로 내 자신에게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계속 세뇌시킨다.

이러한 세뇌방법 중 가장 나에게 효과적이였던 것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하루에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는 그날 바로 다이어리에 난 행복한 사람이다, 난 지금 이미 너무 잘하고있다, 등의 딱히 알맹이가 없는 말들을 쭉 적어내려간다. 반면에 스트레스를 받은 그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 일이 단어와 문장으로서 내 눈앞에 형상화되는 순간, 그것이 진짜 현실이라는걸 내가 인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정하는 순간 그 여파로 내가 감당해야 할 내 안의 슬픔과 화가 터져 나오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후 이전 년도의 다이어리들을 읽으면, 비정상적으로 행복해 보이는 글들이 많다.

나는 이러한 나의 버릇이, 항상 밝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의 심리적 무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이렇게 하길 바랬다. 친한 친구가 나에게 힘든 일을 털어놓으면, 나는 항상 “이러이러한 식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라고 하며, 그 상황에서 오는 슬픔을 친구가 최대한 회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조언을 준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이렇게 밝고 긍정적인 나의 모습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별일 아닌거 가지고 항시 불평불만이 많고, 굳이 인생에서 안 좋은 점들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했다. 왜 동일한 상황인데 저렇게 굳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생각했고, 그와 반대로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남 앞에서 나의 어두운 면을 꺼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그걸 숨기는 것을 넘어 애초에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toxic positivity였다. 별일 아닌 상황에서 크게 마음쓰지 않는 것은 genuine positivity이지만, 나는 그것이 도를 넘어 정말 “별일” 인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억누르곤 했다. 간절했던 면접에 떨어지거나, 남자친구와 헤어지거나, 프린스턴에서 외국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 보이지만 사실 그중에 내 속마음을 터놓을 친구들은 단 한명도 없는 상황들에서의 슬픔이 나를 엄습해 오려는 순간, 나는 그걸 곧바로 차단했다. 기숙사에서 잠에 들기 전 눈물이 나려고 하면, 나는 꾹 참고 바로 일어나서 의자에 앉아 다이어리에 난 행복하다는 주문들을 적었다. 그리고 그 주문들을 내 정신이 실제로 안정될때까지 계속 읽었다. 그러면 정말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전화가 오거나,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가 물어보면, 난 마찬가지로 “나 완전 잘살아“ 하고 대답했다.

그때 프린스턴에서 누군가 나에게 “너 진짜 힘들어 보여” 라고 얘기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도리어 그 사람에게 화를 냈다. 나는 이렇게 친구들도 많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삶을 살고있는데,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나에게서 굳이 억지로 부정적인 감정을 찾아 끄집어내려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정작 안 힘든거 같은데 자꾸 힘든거라고 하니까 너무 짜증이 났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동안 그사람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상황이 완전히 지나고, 작년에 한국에 돌아와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완전히 틀린 사람은 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유독 이런 toxic positivity를 방어기제로 계속 사용했던 이유는, 내 스스로 내 안에 슬픔과 불안과 화가 많은 사람이라고 더더욱 느껴서 였던것 같다. 난 감정기복이 매우 심하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쏟아부었는데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거나, 나를 좋아한다고 했던 사람이 더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성을 잃어버리고 곧바로 화가 나고 눈물부터 난다. 그래서 매번 이런 나의 ups and downs를 있는 그대로 느끼면 내가 무너질거 같아서, 더 적극적으로 자제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회피하다 보니, 삶에서 적당히 필요한 부정적인 자극들에도 노출이 안되고, 그에 따라 마음을 건강하게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함으로서, 새롭게 찾아오는 작은 부정적인 자극에도 극심하게 정신이 위태로워지는 vicious cycle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나 자신을 스스로 온실속의 화초로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좌우명은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자” 였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가능하게 만들려고 억지로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것은 평생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올해 초 한 친구가 심리상담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매일이 행복한 사람은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한 인간의 삶에는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과 노여움이 공존하는 것이 정상인데, 부정적인 부분이 생길때 마다 눌러서 없애버리려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행동일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없어진 것 같아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당연히 지금부터 당장 내 안의 모든 슬픔을 마주할 용기는 하나도 없다. 당장 내일 또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생기면 나는 아마 똑같은 방어기제를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천천히 바뀌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노력 중 하나는 다이어리에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만드는거다. 최근에 꽤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서 시작하는 삼아 그 리스트를 적어봤더니 슬픈 일이 12개나 있었다. 이제 그런것들을 적어서 그 감정들을 온전히 느끼는 것을 덜 두려워하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에게 나의 우울감을 드러내는 것을 너무 무서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들이 나의 밝고 명랑한 모습을 좋아할거라고 생각해왔지만, 사실 정작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의 밝고 어두운 면 둘다 보고싶어 했다. 이제 남들 앞에서 울음이 터졌을 때 울어서 미안하다고 지나치게 사과하지 않을거다. 누군가 나에게 “요즘 잘지내?” 라고 물어봤을 때 “아니 잘 못지내”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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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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