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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이중인격인가 하고 진심으로 의심을 한 적이 있다. 내 안의 너무나도 다른 두 성향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성향이 대체로 한쪽에 치우쳐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평탄하고 coherent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내가 느끼는 나는 어제는 저렇고 오늘은 이런 사람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가” 에 대한 대답이다. 낮에 바쁘게 살다 보면 역시 혼자 있을 때가 제일 편해 하면서도, 밤이 되면 갑자기 너무 외로워서 내가 인생을 헛살았나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든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번씩 들쑥날쑥하는 나의 생각들을, 최근에 “혼자있는 시간의 힘” 이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조금이나마 정리해 볼 기회가 생겼다.

내가 언제 혼자 있고 싶어하고, 언제 혼자 있기 싫어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아직 명확한 답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나는 나의 “이성”을 자극하는 순간들에는 혼자 있고 싶어하고, 반면에 나의 “감성”을 자극하는 순간들에는 혼자 있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성을 자극하는 순간들에는 혼자 있고 싶다

  1. 공부할 때

    나를 고등학교 때부터 봐온 친구들은, 용인외고 5층 자습실 안쪽 구석의 교과서 더미에서 핑크색 담요를 덮고 공부하고 있는 나를 바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50분 주어지는 자습시간에도 굳이 교실을 떠나 나의 자습실 cave로 간 이유는, 공부할 때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정말 교과서에 나와있는 그 개념들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했다. 내가 온전히 혼자인 상태여야 그 어떤 외부 방해자극없이 나의 뇌를 완벽히 사용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아무리 친한 친구가 와서 밥 먹으러 가자 해도 날카롭게 거절했던거 같다. (이런 나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아직까지 곁에 있는 친구들이 정말 소중하다… <3) 지금은 그나마 성격이 느슨해져서(?) 그때만큼 예민하진 않지만, 아직도 내가 당장 데드라인에 맞춰야 하는 업무가 있다면 나는 사람들 없는 회의실 등의 장소에 가서, 그 일이 완전히 끝날때까지 절대로 타인이 그 순간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2. 글 쓸 때

    지금 이 글을 쓸 때 역시 나는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낀 채 맥주 한 캔을 따고 내 방 가장 구석에 홀로 앉아있다. 내가 그 순간에 느끼는 것들을 최대한 조리있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갑자기 엄마가 내 책상으로 과일을 갖다주고 말을 걸기 시작한다면 죄송하지만 좀 짜증이 날 것이다. 친구나 가족이 당장 옆에 있으면, 글의 흐름이 끊기는 것은 둘째치고 당장 적는 글이 정말 나의 온전한 내면의 생각인지, 그냥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아무리 감성에 젖은 글을 쓰다고 해도, 그것을 글로 정리하는 행위 자체는 나는 매우 이성적인 과정이라고 보고, 따라서 혼자가 되기를 훨씬 선호한다.

  3. 책 읽을 때

    요즘 시간날 때 마다 카페를 찾아가 미리 골라둔 책을 읽는 걸 매우 즐기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혼자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앞에서 말한 공부할 때나 글 쓸때와는 약간 다르게, 물리적으로 그 공간에 나 혼자일 필요는 없는것 같다. (사실 이것도 예전에 물리적으로도 혼자이고 아무 잡음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긴 했는데… 강박을 고쳐서 이제 카페에 가서도 생산적인 일을 할수 있게 되었다.) 대신에 내가 아는 사람과 함께 책을 읽으러 가는 것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이 신경쓰이게 되는 순간, 내가 읽는 책의 문장들을 진심으로 내 안에 녹여내지 못하고, 그냥 정말 눈이 물리적으로 책 속의 단어들을 따라 이동하는 것 밖에 더 되지 않는다. 이때도 역시 책과 나 둘만 있어야, 오늘 내가 이 책을 읽었다 하고 남에게 떳떳하게 이야기 해줄 수 있다.

이렇게 공부할 때, 글 쓸 때, 그리고 책 읽을 때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그 순간에 나는 매우 이성적인 나만의 zone에 들어가 있고, 내가 하는 행위들로부터 나의 이성이 한층 더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순간들이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혼자인게 편한 것을 넘어 혼자가 아니여서는 안되는 상태로 나를 몰아넣는다. 지금부터는 반대로, 내가 혼자 있기를 너무 싫어하는 감성적인 순간들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감성을 자극하는 순간들에는 혼자 있기 싫다

  1. 한강에 갈 때

    요즘 내가 운동을 너무 안하고 집에만 있으니, 주변 사람들이 집 앞 한강에라도 나가서 걸으라고 한다. 충분히 핑계로 들릴수도 있지만, 사실 나는 정말 혼자서 한강에 가고싶지 않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한강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해가 다 지고 난 후의 한강을 보면, 도시의 건물들과 움직이는 차들에서 나오는 노랗고 주황색의 불빛들이 아른아른 거리는데, 나는 이것이 내가 살면서 본 것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장면을 혼자 보고 있을 때면, 아름답다 라는 생각 보다는, 이 아름다운 순간에 나 혼자 있지 않고 옆의 누군가와 같이 나누었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아쉬움의 감정이 더 먼저 든다. 그리고 그 아쉬움이 눈앞의 아름다움보다 더 커져서, 슬프고 공허한 감정이 나를 지배할때도 있다. 같이 걸으면서 내가 보고 느끼는 것 들을 그대로 털어놓을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든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은 나에게, “집앞이 한강인데 왜 자꾸 한강에 같이 가자고 하냐”고 한다.

  2. 마음이 울렁거리는 노래를 들을 때

    한강에 갈 때와 비슷한 감정으로, 정말 나의 마음 깊은 곳을 자극하는 노래를 발견하면 그것을 혼자서는 절대 듣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재즈나 lofi 같은, groovy하면서 몽글거리는 노래들을 좋아한다. 곧 연말이여서 그런지 요즘 제일 좋아하는건 카페에서 흘러 나오는 크리스마스 재즈이다. 요즘은 Spotify에서 이런 내 취향에 맞춰 추천해주는 곡들도 계속 이전과 똑같은 것들만 나와서, Soundcloud에서 mixtape들을 많이 듣고있다. 노래의 첫 10초를 들으면 나는 그 노래가 “내 노래”인지 아닌지를 바로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라고 판정이 되면, 그 노래에 너무 심취해 있으면서도, 마음 속 한켠에서 이러한 나의 세계를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리고 그러지 못한다고 느꼈을때 외롭다. 그래서 내가 혼자라고 느낄 때에는 너무 좋아하는 노래들을 일부러 듣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혼자 있고 싶을 때의 나와 혼자 있기 싫을 때의 나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뭔가 다시 읽어보니 내 강박증들을 세상에 내보임과 동시에 나 외롭다고 찡찡댄 것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최근에 “혼자 있는 것”의 본질에 대해 좀 생각해보게 되면서, 무엇보다 나 자신이 혼자라는 느낌을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지 그 혼란을 좀 정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적고나서 보니 내가 이중인격이 아니라는 확신은 역시 안 든다… 그냥 내 안의 이런 양면성이 나를 더 다양한 색채와 향기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믿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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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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